1. "아름다움은 행복의 약속이다" - 스탕달
테드 창의 창작노트를 보면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실험 결과가 있다.
- 과거의 심리학자들은 가짜 대학 입학원서를 여행자가 깜빡 잊고 간 것처럼 공항 안에 놓아두는 실험을 시행한 적이 있다. 원서의 여러 항목에 기입된 글은 언제나 동일했지만, 가공인물인 지원자가 사진을 이따금 바꾸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지원자가 매력적인 용모를 가지고 있을 경우 원서를 주운 사람들이 그것을 대신 우송해 줄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이 실험은 우리가 겉모습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실제로는 결코 서로 얼굴을 맞댈 일이 없는 상황에서조차도 우리는 매력적인 사람들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동의하지 않아도 좋다. 당신도 곧 얼굴에 칼을 들이댄 혹은 들이댈 그녀에게 혹할 테니까. 너무 과한 표현인가? 소름 끼치도록 찬란한 '외모 지상낙원(Lookism Paradise)'에 안주해 있는 우리 눈은 이미 흐릿할 대로 흐릿해져 버렸다. 미(美)란 그 자체로써 보자면 본질을 그저 아름답게 느끼는 신경적 반응에 불과하지만, 본질과 본질을 구분 짓는 역할을 수행하는, 일종의 자아(自我)의 증명(證明)인 셈이다.
더 이상 외모로 차별하지 말자고?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상 다 헛소리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칼리그노시아(실미증, callignosia)가 가상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조셉 웨인가트너, 신경학자
이 상태는 통각적(統覺的) 실인증이라기보다는 연상적(聯想的) 실인증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조치는 개인의 시각에는 간섭하지 않고,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을 인식하는 일에 간섭할 뿐입니다.
인간은 뇌의 신경회로를 통해 상대방의 아름다움, 추함의 정도를 감각으로 경험한다. 그러므로 이 경로들을 차단하여 인위적인 '칼리그 노시아'를 유발함으로써 심미적 반응의 결여를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얼굴 하나하나에 대한 특징과 감각은 또렷이 인지하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일뿐 무엇이 아름답고, 덜 아름답다는 것에 대한 차이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칼리그노시아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원천적으로 핸디캡을 봉쇄하여, 타고난 소인(素因)을 제거하고, 처음부터 불리한 위치에서 싸울 필요가 없어진다. 모든 사람이 칼리그 노시아를 채택한 환경을 만들고, 사회교육을 통해 겉모습에 대해 가치 판단을 하지 말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따져보면 끔찍하기 이를데 없다. 감각을 봉쇄하다니.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닌가. 그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떡볶이, 초콜릿, 설렁탕은 과연 무슨 맛으로 먹을까. 장미, 카나리아, 진달래, 선인장을 보고 생김새만 다를 뿐 같은 평가밖에 못한다면, 나 여자친구에게 장미 100송이 대신 잡초 몇 포기 뽑아 선사해도 좋을까. 외모에 관한 한 권리의 평등을 발현하자면, 미스코리아 대회부터 당장 집어치우고, 입사 시험장에 장님 면접관을 두어야 한다. 전지현, 이효리는 이 시대 위대한 여신이 아니라 그냥 알려진 여자다. TV에 나오는 소위 "예쁜" 연예인들을 기준삼지 말고 슈렉 같은 아내를 표본으로 증명해 보라. 당신, 그럴 자신이 있는가?
2.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에 대하여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자초한 것이지만, 잘못은 아니다. 나는 그것이 당연한,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더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는 생식적 본능와 일맥상통한다. 모든 생물은 종의 번식을 위해 최대한 우위를 점하려 든다. 여기서 이야기하길, 그중에서도 가장 명백한 것은 매끄러운 피부이다. 이것은 새의 경우에는 선명한 깃털, 인간 이외의 포유류의 경우에는 반들반들한 모피에 해당한다. 피부 상태가 좋다는 것은 아마 젊고 건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최상의 지표(指標)이고, 모든 문화권에서 높게 평가되는 특성일 것이다. 여드름은 대수롭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병처럼 보일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것이다. 얼굴의 좌우 대칭 또한 유전자적으로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얼굴 왼쪽과 오른쪽 사이에 존재하는 밀리미터 단위의 차이까지 의식하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가장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의 얼굴을 측정해 보면 좌우의 균형이 가장 잘 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동물들의 구애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자신 있는 부위를 드러내며 적극적으로 애정 공세를 펼치는 모양새는 어느 동물에나 보편적으로 흡사하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에나 절대적인 미의 관점은 있고, 그 관점은 맥락상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단지 모양새와 정도의 차이일 뿐 건강한 피부와 균형있는 얼굴, 특징적인 부위처럼 누구나 선호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뚜렷한 기초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외모를 추구하는 공통된 특성이 자연스럽다는 것이지, 결코 외모 지상주의를 두둔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경쟁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는 있지만, 미가 모든 것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 말이다. 겉모습만 보고 모든 것을 평가하는 이 시대의 얼굴은 오히려 추악해 보인다.
젠장, 나는 잘생겼다. 그리고 보기 좋고, 먹기도 좋은 떡을 찾을거다. 이 자신감과 무한한 욕심만으로도 충분히 스스로 멋지지 않은가. 당신들이 굳이 실미증 환자가 되어주지 않더라도.
- 이 책에 실린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를 읽고 쓴 글이다. 사실 이 책을 전부 읽은 것은 아니고, 작년에 달랑 이 단편 하나를 누군가 보여줘서 읽었는데 이때 테드 창을 처음 알게 됐다. SF작가라는 호칭은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인 듯. 읽어보면 확실히 무언가 다른 차원의 냄새가 난다. 이 책에 실린 여덟 개의 중단편은 세계의 주요 문학상을 석권한 걸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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