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를 바다의 목초(牧草)라고도 하는데, 이는 멸치가 수적으로도 많을 뿐 아니라, 크기도 먹잇감으로 알맞기 때문에 방어, 고등어, 돔, 다랭이, 새치, 갈치 등 많은 어식성 어류들이 먹이로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분류학적으로는 청어목 멸치과에 속하는 하등 경골어류이고, 옛날에는 멸치(喪致), 멸어(喪魚), 멸오치(五致) 등으로 표기하였는데 물밖에 나오면 빨리 죽는다는 뜻으로 쓴 것 같다.
플랑크톤을 먹고 자라며, 무리를 이루는 것 외 다른 방어능력이 없어 항상 육식성 어류에게 잡아먹히기만 하는 아주 연약한 어류이다. 또 천성적으로 약하게 태어나기도 했거니와 선도유지가 어려워 쉽게 상하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魚변에 약할 약자를 쓴 이라고도 한다.
영어로는 Anchovy, Half mouth sardine이라 하고, 중국에서는 魚,, 饒仔, 苦子, 일본에서는 Katalkuchi-iwashi(片口)라고 하는데, 약하다는 의미 외에 위턱이 크고 길며 아래턱은 작고 짧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행어(行魚)라는 어류가 소개되어 있는데, 오늘날의 멸치라고 하며, 이에 대한 정문기 씨의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에는 말할 것도 없고, 1910년경만 하여도 제주도 모슬포 연안에는 멸치가 많았기 때문에 그물로 잡을 필요도 없이 바닷가에서 바가지로 그냥 퍼 올렸다고 한다. 멸치는 성질이 급하여 연안으로 대군이 밀려오면 우왕좌왕하다가 앞쪽에 있는 것은 스스로 해변이나 길에 뛰어 올라온다. 이 때문에 멸치를 행어라 하는데, 여기서 行은 길이란 의미로 사용한 것 같다.”
최근 강원도 강릉지방의 해변에도 여름철에 멸치가 올라와 주민들이 손으로 주워 담는 진풍경이 TV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왜 멸치가 해변으로 뛰어오르는 것일까?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몇 가지 경우를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멸치어군이 상어, 고등어, 방어, 갈치 등의 어식성 어류나 돌고래와 같은 천적의 추격을 받으면 방어능력이 없는 멸치는 혼비백산하여 얕은 곳으로 도망을 치게 된다. 이때 해안 가까이 쫓겨온 것은 파도에 밀려서 해변으로 올라오게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은 미국 대서양 해변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데, Menhaden(Brevoortia)이라는 대서양산 청어가 Blue fish라는 악명 높은 육식성 어류에게 쫓겨서 해변의 모래사장으로 뛰어 올라온다고 한다.
둘째는 깊은 곳에 있는 찬물이 위로 솟구치는 이른바 냉수괴의 용승이 일어나면 이를 피하기 위하여 얕은 곳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멸치나 Menhaden과는 조금 다른 이유로 해변의 모래사장에 올라오는 어류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연안에 서식하는 Grunion(Leurestes tenuis)이라는 15cm 정도의 은백색 소형 어류는 산란을 하기 위하여 모래사장에 올라오는 어류로 유명하다. Grunion은 3~8월의 초승달과 보름달에 해당하는 대조 시에 대군을 형성하여 연안으로 밀려와 밤에 만조선 부근의 가장 높은 모래사장까지 파도에 떠밀려 올라온다. 암컷은 순식간에 꼬리로 모래 속에 파고들어가 산란을 하고 수컷은 모래 위에 정자를 방출하여 수정을 시킨다. 보통 30초 만에 산란과 수정이 끝난다. 산란이 끝난 개체는 다음에 밀려오는 파도에 실려서 다시 바다로 되돌아가고, 또 다른 암수들이 올라온다. 산란된 알은 모래 속에 묻혀서 발생이 진행되고, 부화된 유어는 정확히 2주 후 대조시에 파도에 밀려서 바다로 들어가게 된다. 이런 산란습성은 바닷속의 해적으로부터 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 조선 부근의 모래 속에 산란을 했으니 최소한 부화 시까지는 안전할 수가 있으니 말이다. 산란을 하기 위하여 모래사장에 올라온 Grunion을 손으로 잡아도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자원보호를 위하여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또 그물이나 어구를 사용해서는 안되고 반드시 손으로 잡는 것만을 허가하고 있다.
멸치는 추광성이 강하여 불빛에 잘 모이는 성질이 있다. 지금도 통영 지방에서는 불빛을 이용하여 멸치를 잡는 들망어업을 하고 있는데, 이 어법은 오래전부터 조상들이 해왔던 지혜로운 어법이다.
자산어보(1814)에는 멸치를 추어(銀魚), 속명으로는 멸어(慶魚)라 하였고, 불빛을 이용하여 잡으며, 말리기도 하고 젓갈을 담기도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六月始出霜降則退性喜明光每夜漁者藝燈而引之及到军窟以 網出或羹或编或腊或為魚餌, 6월에 나타나서 상강에 물러간다. 성질은 밝은 것을 좋아한다. 매일 밤 어부들은 불을 밝혀 유인한 다음 함정에 들어오면 쪽대그물로 잡아낸다. 국을 끓이거나 젓갈을 담그고 말리기도 하고 혹은 고기잡이 미끼로도 이용한다.” “產於可佳島者體頗大冬月亦漁然都不如關東者之良嗜案今之喪魚随之腊之充於底盖膳品之践者也, 가가도에서 잡히는 것은 매우 크며, 이곳에서는 겨울에도 잡힌다. 그러나 관동에서 잡히는 것보다는 못하다. 살피건대 요즈음 멸치는 젓갈용으로 쓰고 말려서 양념으로도 쓰지만, 선물용으로는 천하다.”
멸치는 보통 아침에는 5m 층, 낮에는 10m 층(최대 25m 층), 저녁에는 수면 가까운 얕은 층으로 이동하므로 낮과 밤에 따라 유영 수층을 달리하는 습성이 있다. 멸치뿐만 아니라 샛비늘치 등과 같은 동물플랑크톤 식성 어류들은 낮에는 조금 깊은 곳으로, 밤에는 얕은 곳으로 수직이동을 하는데, 이를 수직 회유(垂直回遊, Vertical migration)라 한다.
많은 어류들은 먹이를 먹기 위하여 먼 거리를 수평적으로 이동하는 색이 회유(索鮮回遊)를 하는데, 앞서 말한 멸치 등 동물플랑크톤 식성 어류는 수직적으로 이동하는 수직 회유를 하는데 그 이유는 요각류 등 동물플랑크톤은 광선이 강한 낮에는 깊은 곳으로 내려가고 밤에는 얕은 곳으로 올라오는 주야 이동을 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잡아먹는 멸치나 샛비늘치 등도 이들 플랑크톤을 쫓아서 수직으로 이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남미대륙 북단 페루 근해에는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멸치와 조금 다른 Engraulis ringens라는 멸치 종류가 어획되고 있다. 이 멸치는 1970년에 1,300만 톤이 어획되었으나 1973년에는 196만 톤으로 감소되었다. 단일 어종의 어획고로는 실로 엄청난 량인데, 페루가 세계 제일의 어획고를 기록했던 것도 바로 이 멸치 때문이었다.
페루에서는 이 엄청난 멸치를 어분과 기름으로 가공하여 외국으로 수출을 하였는 데, 1970년대 후반부터 멸치가 잡히지 않아 페루는 어분과 어유의 생산은 말할 것도 없고, 비료의 생산에도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멸치가 잡히지 않는데 비료 생산은 왜 타격을 받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 것이다. 멸치가 줄어들자 멸치를 잡아먹는 갈매기 등 물새의 먹이가 부족하여 이들 또한 감소하였다. 물새들의 배설물에서 얻는 비료 원료인 구아노가 감소했기 때문에 비료생산에 차질이 생긴 것은 당연한 일이다.
멸치는 사람이 널리 식용으로 할 뿐 아니라 각종 해산어류의 양식사료로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멸치를 단독으로 장기간 급이를 하면 대량 폐사의 위험이 따르게 된다.
1965년경 일본에서는 양식 방어의 사료로 멸치를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때 전국 방어 양식장에서 대량 폐사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선도가 떨어진 멸치를 급이 했기 때문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멸치 내장 속에 들어 있는 Thiaminase(Aneurinase)라는 비타민B1 파괴 효소 때문에 방어가 모두 비타민B1 결핍증에 걸려 폐사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Thiaminase는 각종 패류, 담수어류, 갑각류 등에도 널리 존재하고 해산어류 중에는 멸치, 전어, 학꽁치, 꽁치, 숭어 등에 매우 많이 들어 있고, 까나리에는 많고, 가다랑어, 만세기, 날치, 정어리 등에는 약하게 들어 있는데, 근육보다는 간장 등 내장에 많이 들어 있다.
이 때문에 어류 양식장에서는 멸치만을 장기간 급이 하는 일이 없도록 특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멸치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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